저녁, 한참을 아이들과 함께 수영을 하고 서로가 같이 자겠다, 따로 자겠다 실랑이 하던 두 아이들은 내 베개 옆에 나란히 누워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난 첫째 배 위에 손을 대고 숨 쉬는 것을 확인하기도 하고 보들보들한 뱃살을 즐기기도 하며 머리를 맞댔다. 아빠랑 자는 것을 좋아하는 첫째는 다행히 불편하진 않은지 눈을 감고 다리를 내 허리에 툭하고 올렸다. 얼마 동안 서로의 숨을 느끼는데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애기의 숨은 그다지 뜨겁지 않다
지금 나와는 다르게.
거제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대충 감으로 보면 7년 만이려나.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한 번 갔었었다. 독하게 바람이 불던 바람의 언덕, 뱃멀미에 지옥과 같은 왕복의 기억을 줬던 외도 보타니아를 다녀온 적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하루에 많은 일정을 잡지 않는 저에게는 이게 바로 훈!련!)
아주 심플하고 명확한 이유들로 거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들은 아래.
1. 창원을 벗어나 다른 도시에 가고 싶다.
2. 거제에 료칸 느낌의 풀빌라가 있다. (아이들과 일본 여행을 가고 싶지만 돈도 시간도 없다)
3. 거제까지 가는 시간이 대폭 짧아졌다.
4. 책방 익힘에 가보고 싶다.
5. 회 먹고 싶다. (마산 사람인데;)
6. 아이들과 방학마다 무조건 여행을 다니겠다는 나의 다짐.
7. 탕에 몸을 지지고 싶다. (솔직히 여기서부터 시작된 여행)
명분과 이유가 있으니 끝. 고민은 숙소 예약의 가능성만 낮출 뿐이니 바로 결제! 내가 예약한 숙소에는 수영장이 딸려있지만 수영 안 할 건데~ 탕만 들어갈 건데~ 하고 추가 결제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게 이 수영장이 신의 한 수였다. 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날씨도 굉장히 좋았고 가는 길은 정말 쾌적했다.
아이들이 휴게소에 들러 맥반석 오징어를 먹고 싶다해서 (너희 입맛이 왜그래?) 함께 핫바와 오징어를 나눠 먹으며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휴대폰으로 행선지를 확인했다. 바로 숙소에 가긴 이르기도 하고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 원래 목적지인 숙소보다 20분 정도 더 떨어진 <책방 익힘>에 가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은 장시간 차에 있던 터라 조금씩 지치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아이들의 멀미 한계치에 임박했을 때 도착한 장승포. 주차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정말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이 우연하게 눈에 띄었다. <커뮤니티 바 모라> 진짜 가고 싶었던 곳인데 그동안 멀다는 핑계로 못 왔었다. 아, 책방 익힘과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구나. 오히려 좋아, 너무나 좋아. 애기들과 함께라서 이번에는 못 가지만 거제에 다시 와야 할 이유 그리고 숙소를 장승포로 잡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딱 기다려. 다시 올게, 거제!)
동네는 아기자기 굉장히 귀여웠다. 작은 구역 내에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인가 싶은 곳에 보이는 간판. <책방 익힘> 거제에 가면 꼭 가볼 곳이라고 주변에서 추천하기는 했지만 동네 책방이라는 것 말고는 그렇게까지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박살이 나고 마는데…
사람이 가득하다. 모든 좌석에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건 나에게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최근 동네 서점의 생존 방법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어이, 에이든. 너도 책방과 클래식 바를 같이 하고 있잖아;;)
우선 커피와 핫초코 그리고 간단한 간식을 주문했다. 둘째는 멀미의 여파로 물을 간절히 찾았다. 간만에 아주 수준 높은 퀄리티의 롱블랙을 마실 수 있었다. 휴게소에서 산 커피로 카페인만 충전한 나는 책방 익힘의 커피는 은혜로운 성수 같은 느낌이었다. 이거 뭐지? 하며 핫초코를 마시기를 주저하던 첫째는 조심스레 한입 마시고 “이거 겁나 맛있어‘라고 했다. ”응, 아빠도 그래“라고 답했다.
아이들을 잠깐 두고 책방 공간으로 갔다. 입구에 있는 이쁜 팬시 굿즈들, (주의: 애기들은 이 공간이 들어오면 굿즈를 사정없이 쇼핑하게 되니 주의 요망. 나는 당했으니, 당신들은 당하지 마시길) 작지만 알차게 큐레이션 된 독립 출판물들과 서적들을 보며 솔직히 많이 배웠다. 서적 쪽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언제나 머릿속은 혼돈이었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사진 열심히 찍었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거제에 거주하고 계신다는 이제니 작가님의 신간 <새벽과 음악>. 전부 사인본이었고 소개글도 친필로 쓰여있었다. (사인과 함께 있는 문구가 여러 가지였다! 이런 디테일!!)
오랜 시간 머무르고 싶었지만 사람도 많았고 애기들의 인내심을 다하기 전에 나오는 것이 모든 인류에게 좋을 것 같기에 얼른 나왔다. 다음에 꼭 오겠다. 그때는 오랫동안 지겹도록 즐기겠어. 여기 장승포, 각오하라. 예정보다 조금 늦게 숙소에 도착 후 짐을 풀었다. 역시 나란 사람, 담배 피우는 것을 제외하고는 숙소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간단히 라면을 먹고 숙소 측의 착오로 준비된 온수 가득한 수영장에 다 같이 입수!! (어쩔 수 없이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렇게 좋아할 수가 있을까. 처음에 무서워하던 애기들은 약 3분 뒤, 매초 매분 단위로 싸우던 전적은 어디 가고 전 우주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수영을 하고 잠수를 하고 꺄르르 웃었다. 편백 자쿠지에 물을 받고 아이들과 놀아주던 나는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드디어 원래 나의 목적이었던 뜨거운 탕에서 온몸을 지질 수 있었다. 그날 밤은 그랬다. 아이들은 약 3시간 동안 물놀이를 했고 나는 잠시나마 평온을 느꼈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었다. 그 시간이 지독하게 소중했다.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오전 11한시에 체크아웃이라고 말해주니 아이들은 다음날 아침 8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8시가 땡 하자마자 훌러덩 훌러덩 첨벙.
수영장 밖 유리 너머로 붉게 해가 솟아 오르는 것을 잠시 멍하니 봤다.
아이의 볼을 부딪혀 느껴지는 나의 숨은 불처럼 뜨겁다.
이게 뭘까, 어떤 의미일까 고민을 잠시하고 내 뜨거운 숨이 작은 존재의 잠을 방해할까 조심스럽게 거리를 뒀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잠은 저기 멀리 달아나 있었다.
아마도 그건 내 안에 있는 불안 정도일 것이다.
나와 아이들의 차이는 거기에 있는 것이겠지.
그들의 숨은 아주 천천히 뜨거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