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규모와 자본. 로컬에서 하는 기획은 규모와 자본이 윗지방보다 상당히 제한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기획이라고 생각해 볼까요. 서울시 청년인구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창원보다는 훨씬 많을 겁니다. ‘칵테일 클래스’를 예로 들어 봅시다. 서울에서 이런 거 한다고 광고하면 노출되는 범주도 넓고, 그중에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과 참여하는 사람도 꽤 많겠죠. 넷플릭스 연가 등의 메이저 매체를 통해 소모임을 열면 개최 가능성도 높을 겁니다. 하지만 창원을 예로 들어보자고요. 상대적으로 노출 인구, 관심, 참여 인구도 서울에 비해 상당히 적을 겁니다. 열면 인원 모집이 안 돼서 실패하거나, 원래 목표로 했던 청년층 말고도 다양한 인구층을 목표로 해야 한번 할 수 있을까 말까 하겠죠. 제 이야깁니다. 예.
진해에서 2년가량 칵테일 클래스를 운영했습니다. 도시재생 사업이랑 문화도시 지원센터 사업 등을 지원받아 한 건데, 당연히 정부 지원사업이니 술은 사비로 사거나 참여비 받아서 진행했죠. 프로그램 진행이 원활했냐고 하면, 당연히 아닙니다. 노쇼 인원이 나오면 대체 인원이 없기에 적자 나고, 매번 참여자 어떻게든 모집하는 것도 빡셌고, 그렇다고 해서 수익을 낼 수 있냐, 그것도 아니죠.
아니 시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건데 뭔 수익을 바라는 거냐.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거 세금 받아서 하는 건데 뭐 그리 바라는 게 많냐고. 아무리 하고 싶은 걸 한다고 그래도 매번 적자 보면서 하는 건 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이거 땜빵하려고 알바뛰기도 했으니까. 당연히 이건 ‘주류’를 다루는데 정부 지원 사업 지원받은 제 잘못이긴 합니다.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스펙과 경험이 될 거라 굳게 믿어 어떻게든 주류 문화 좀 바꿔보려고 했던 사람의 치기예요. 시스템도 잘못 설계했고.
근데 말입니다,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보면 서울에서 칵테일 공부나 전통주 크루와 같이 깔쌈한 모임을 하는 걸 종종 봐왔단 말이에요. 위쪽에선 그걸로 쏠쏠하게 돈도 벌고, 모임도 크게 만들어서 후원도 받고 그래요. 제가 칵테일 클래스를 운영하게 된 계기도 나름 백만 도시인 창원에 이런 모임이 있을까-를 찾아봤는데, 없어서 만들게 된 겁니다. 되게 별거 없어요. 어려운 거 아닌데 지방에서는 그게 어려워집니다. ??: 서울처럼 지원 없이 그냥 자체적으로 하면 안되나요? 죄송합니다 그때는 학생이라 돈도 없고 공간도 없고 해서 지원 사업의 힘을 빌릴수 밖에 없었어요.
거창한 것도 하기 힘들고, 작은 것도 하기 힘들고, 그게 지방이에요. 위쪽에서는 경쟁하느라 빡세다면, 여기는 경쟁상대가 없기에 지루해요. 다른 부분에서 치열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너무 많은 양식장에서 낚시하는 것과, 아무도 모르는 낚시 포인트를 개척하는 차이 같아요.
특히나 그 모임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이 청년 나이대라면 더더욱 힘들어집니다. ‘내가 하는 게 유의미한가?’를 항상 생각하게 된단 말이에요. 직관적인 변화도 없고 성장세도 엄청 더디니까. 남들은 취업 준비하고 공무원 준비하고 아주 FM의 길을 걸으려 하는데 내가 이런 걸 하는 게 맞는가? 파이가 큰 서울에서 기획하는 사람들은 이걸로 성장하고 먹고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니 ‘그래 끝까지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지방은 주위에 비슷한 경우가 없죠. 미래가 안 보이니 자기 행동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어요. 열정으로 시작했던 기획을 내 업으로 하기 위해 향후를 보면 암울하고 절망적일 겁니다. 이대로 굶어 뒤지겠는데?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주위에 저를 돕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2년도 안 돼서 때려치웠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지방에서 기획한다는 건, 특히 먹고 살기 위해서 기획한다는 건 아주 암울한 짓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매력적이고 재밌는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떻게든 재미 하나도 없는 도시를 재밌게 만들어 보려고, 또는 지방에서 맺어진 연을 이어가고 싶어서, 주위 사람들 때문에, 또는 지방의 캐릭터를 살려가고 싶어서, 고향이라서, 용 꼬리보단 이무기 대가리가 나은 거 같아서. 뭐 사람 많은 게 싫어서 이곳에 남아 있기로 한 사람도 있지만요.
글 내내 우울한 얘기만 했지만, 그런데도 로컬 기획은 재밌어요. 서울권에서 기획을 안 해봐서 로컬기획과 메인스트림의 차이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소소하면서도 특별한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명확한 장점이 있다고 믿어요. 돈이 안 된다는 쓰라린 사실은 있지만, 이는 파이를 키우고 굳이 대상을 로컬로만 한정 짓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길은 어두컴컴해도 예초기 돌리듯이 길을 개척해 나간다는 마음으로 하면 꽤 보람찬 일인 거 같아요.
다만 아직도 뭐 때문에 여기서 기획질을 하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해보고 싶은 건 많지만 가야 할 방향도 잘 모르겠고, 이게 정녕 맞는지에 대한 믿음도 없어요. 그럼에도 로컬에서 살고 싶습니다. 내 거주지가 노잼에다 삭막한 동네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불안 속에서 그나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거 하나는, 여기서 살아가고 싶어서 기획한다는 말이에요. 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습니다.
앞으로 뭔 얘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번에는 로컬에서 왜 살고 싶은지, 뭔 기획을 하고 싶은지 등등을 얘기할 거 같네요. 그리고 왜 그런 기획을 하고 싶은지도. 자기소개도 조금 덧붙일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의 글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안 쓸 수도 있고요. 여하튼 이만 줄이겠습니다. 뻐킹 로컬 라이프 하십쇼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