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있었다. (휴일이 사일! 별이 다섯 개! 꺅!)
하지만… 화이트래빗 북스앤바는 오픈 이후 명절 연휴 역시 계속해서 쭉 영업을 해왔다. 물론 내가 현명하게 쉬는 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 자영업을 오래간 하다 보니 쉬는데 대한 불안감이 상당하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좀 쉬면서 몸 챙길게요. 하하.)
오픈 후 첫해 설과 추석은 손님이 적어 한산했지만 둘째 해부터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연휴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만석, 매출도 좋아 특히 날 짧은 2월을 든든하게 버틸 수 있게 해준다. 재밌는 점은 몇 번의 명절 연휴를 보내며 뭔가 명절의 느낌이 서서히 달라지는 것이 체감되는 것이다.
(WE ARE ALL AGING. FxxK)
1. 명절 당일에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명절 당일 저녁, 토끼굴이 그렇게 북적일리가 없지!)
2. 친척인사를 명절 연휴 이전에 해치워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연휴 동안 온전하게 쉬기 위해서 라는 대답이 인상적.)
3. 다들 나이도 먹고 결혼도 했으니 한 곳에 모이지 말고 각 가족들끼리 모임. (이건 내 이야기;; 뭘 보냐, 먼 길 오지말고 각 가족들끼리 모이자)
4. 친척, 가족 행사도 전부 합쳐서 줄이거나 하지 않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렸음.
(이번에 느낀 건 친척 사이에 돈, 감정, 사기 문제에 엮이지 않은 사람들 수가 더 적었다)
5. 화이트래빗에 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울음이 터진 손님이 둘. 가끔 봐서 좋은 관계가 있고 아예 안보면 더 좋은 관계도 있다고 느낌.
6. 고향에 와서 오랜만에 본 친구와 함꼐 화이트래빗을 들리는 분들이 점점 늘어남.
(어머, 소개해주고 싶은 장소가 되어가는 중인가? 쑥쓰럽네)
이상 명절에 친척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느낀 명절 변화 풍속도였다. 읽어봐서 알겠지만 따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다들 느낄 수 있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변화이다. 그런데 이 변화가 체감되기 까지의 속도에 솔직히 놀랐다. 3년. 단 3년만에 이렇게 변화가 잘 느껴지다니. 또다른 3년 뒤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니, 상상이 된다. 뭐 다들 집에서 쉬거나 해외여행 가겠지;;)
다음날 일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표정은 여느때 보다 온화했으며, 이전과는 다른 웃음 소리를 내는 것 같기도 했다. 평생 혹은 오랜 시간동안 일이라는 것을 해야만 하는 현대 인류의 입장에서 죄의식 없이 연속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저렇게 귀한 것이라는 것을 칵테일 쉐이킹 도중 손님들을 둘러보며 느꼈다. 그래서 최근 나의 유튜브 검색 이력에는 <프리터>가 도배되어 있는 것인가. 거의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데 소비하고 있는 나에게 프리터, 자연인, 히피의 삶을 사는 예술인들은 동경과 의심의 대상이자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 해태, 기린 같은 유니콘과 이다. 의뭉스럽다.
여담
1. 몇년 전, 개신교를 믿기 시작한 나의 어무이는 (역자 주, 어머니) 신앙을 가지신 이후로도 계속 차례, 제사를 지내왔다. 하지만 이제는 하지 않는다. “갑자기 왜 안하기로 한거예요?” 10년 넘게 하지 말자고 주장해온 나는 갑자기 그만 둔 이유가 궁금해 시장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봤다.
아들, 교회를 다녀도 뭔가 안하면 찝찝하고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계속 했었지. 근데 그렇게 차례상, 제사를 챙겨도 안 좋은 일이 생겼잖아. 그래서 안하기로 했어. 다 쓸모 없더라. 흐음, 그렇군 이라는 짧은 대답을 하고 창 밖을 초점 없이 바라봤다.
2. 설 연휴 동안 화이트래빗에 오신 모든 분들에게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했다. 그 중의 몇명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바닥을 쳐다보다 어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나 제발 복 좀 많이 받어!
형, 형이 복 많이 많이 받아야해. 진짜.
그 뒤에 건냈던 어색한 주먹인사와 포옹도 아닌 하이파이브도 아닌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작별인사가 한참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결론 -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만나지 말고 좀